평범한 물에 ‘죽음’이라는 이름을 붙였더니 2조 원짜리 회사가 됐다

평범한 물에 ‘죽음’이라는 이름을 붙였더니 2조 원짜리 회사가 됐다

마트 음료 코너에서 검은색 캔 하나를 발견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캔에는 해골이 그려져 있고, 제품 이름은 ‘리퀴드 데스(Liquid Death)’, 우리말로 번역하면 ‘액체 죽음’입니다. 얼핏 보면 독한 에너지음료나 맥주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캔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놀랍게도 그냥 물입니다.

몸에 특별히 좋은 성분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마시면 갑자기 힘이 솟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 이상한 물 브랜드는 2022년 기업가치 7억 달러를 인정받았고, 2024년에는 그 두 배인 14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조 원에 가까운 기업으로 평가받았습니다. 2024년 투자 유치 금액만 6,700만 달러였습니다.

사람들은 왜 평범한 물을 굳이 검은색 캔에 담아 사 마신 것일까요?

이 이야기는 물을 잘 만든 사람의 성공담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물을 마시는 장면을 새롭게 만든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록 공연장에서 발견한 이상한 장면

리퀴드 데스의 창업자 마이크 세사리오는 원래 음료 전문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펑크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했고, 공연 포스터와 앨범 표지를 직접 디자인했습니다. 이후 디자인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과 광고를 공부하고 광고회사에서 일했습니다.

사업의 씨앗은 2009년 미국의 록 음악 축제인 워프드 투어에서 발견한 이상한 장면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여러 밴드는 에너지음료 회사의 후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무대 뒤에는 유명 에너지음료 캔이 가득 쌓여 있었고, 땀을 흘리며 공연을 마친 가수들도 그 캔을 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캔 안에 들어 있던 것은 에너지음료가 아니라 물이었습니다.

공연자들은 실제로 에너지음료를 계속 마시고 싶지는 않았지만, 후원 브랜드의 캔을 들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에너지음료처럼 생긴 별도의 물 캔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이크는 이 장면을 보며 한 가지 의문을 품었습니다.

“왜 건강한 음료는 항상 착하고 조용하고 재미없게 보여야 할까?”

당시 재미있고 반항적인 광고는 대부분 맥주, 과자, 에너지음료 같은 제품의 몫이었습니다. 물과 건강식품 광고에는 푸른 산, 맑은 계곡, 요가를 하는 사람처럼 비슷한 이미지가 반복됐습니다.

마이크는 이 틈을 발견했습니다.

물을 바꿀 필요는 없었습니다. 물을 마시는 사람의 모습을 바꾸면 됐습니다.

가장 바보 같은 이름을 찾다

마이크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 때 지금도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바보 같은 생각은 무엇일까?”

사람의 머리는 과거에 성공한 것을 반복하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일부러 나쁜 아이디어를 떠올려야 기존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가장 건강하고 안전한 음료인 물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붙여보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Liquid Death’였습니다.

검은색 캔, 해골 그림, 맥주 같은 디자인, 그리고 “갈증을 살해하라”라는 과격한 문구까지 더해졌습니다.

보통 기업이라면 소비자가 무서워하거나 오해할 수 있다며 모두 반대했을 이름입니다. 실제로 마트에서 처음 본 사람들은 맥주나 에너지음료로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오해가 바로 마이크가 원했던 반응이었습니다.

“저게 도대체 뭐지?”

소비자가 제품을 집어 들고, 사진을 찍고, 친구에게 보여주게 만드는 것. 그것이 리퀴드 데스의 첫 번째 목표였습니다.

마이크는 제품 자체에 마케팅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광고비를 많이 쓰지 않더라도, 제품을 본 사람이 자발적으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릴 만큼 이상하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 한 캔도 없이 광고부터 만들었다

더 놀라운 것은 마이크가 실제 제품을 만들기 전에 광고부터 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그에게는 공장도 없었고, 물 공급업체도 없었으며, 판매할 캔 한 개조차 없었습니다.

대신 실제 제품처럼 보이는 3차원 캔 이미지를 만들고, 약 1,500달러를 들여 광고 영상을 촬영했습니다.

영상은 평범한 생수 광고와 정반대였습니다. 자연과 건강을 강조하는 대신 거칠고 황당한 유머를 사용했습니다.

그 광고는 약 4개월 만에 페이스북에서 300만 회 조회됐습니다. 리퀴드 데스의 페이스북 팔로워는 약 8만 명까지 늘었고, 당시 유명 생수 브랜드 아쿠아피나보다 많은 팔로워를 확보했습니다.

사람들은 댓글을 달기 시작했습니다.

“이 제품은 어디서 살 수 있나요?”

“진짜 판매하는 제품인가요?”

미시간주의 한 세븐일레븐 가맹점주는 자신의 매장에 제품을 들이고 싶다며 직접 연락하기도 했습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제품에 주문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이크는 이 반응을 투자자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결국 초기 투자금 15만 달러를 확보했고, 오스트리아의 물 공급업체를 찾아 실제 제품을 생산했습니다.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첫 달 매출은 10만 달러였습니다. 당시 마케팅 비용은 약 2,000달러에 불과했고, 준비한 제품은 모두 팔렸습니다. 수요를 예상하지 못해 한 달 넘게 품절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실패할 것 같았던 시기에 시작된 대형 유통

리퀴드 데스에 관심을 보인 첫 번째 대형 유통업체는 홀푸드였습니다.

홀푸드는 리퀴드 데스가 플라스틱병 대신 알루미늄 캔을 사용한다는 점과 ‘플라스틱에 죽음을’이라는 메시지에 주목했습니다.

하지만 전국 판매가 시작된 날짜가 절묘했습니다.

2020년 3월 15일, 미국에서 코로나19 봉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기였습니다.

매장 방문객이 줄고 공연과 축제가 취소되면서, 록 공연장과 젊은 소비자를 겨냥한 브랜드에는 최악의 상황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리퀴드 데스는 살아남았습니다.

첫해 280만 달러였던 매출은 2021년 4,500만 달러로 증가했습니다. CNBC 영상이 제작된 2022년에는 연 매출 1억3,000만 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었으며, 미국 내 6만 개 이상의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성장은 계속됐습니다. 2023년 매출은 2억5,000만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보도됐고, 2024년 3월 기업가치는 14억 달러로 뛰었습니다.

사람들이 산 것은 물이 아니었다

리퀴드 데스의 성공을 단순히 ‘포장을 잘한 생수’라고만 해석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이 제품은 사람들이 특정 상황에서 느끼는 불편을 해결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파티나 술집에서 생수병을 들고 있으면 혼자 분위기에서 벗어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맥주처럼 생긴 리퀴드 데스 캔을 들면 다른 사람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영상 댓글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파티에서 리퀴드 데스를 들고 있으면 대화의 소재가 되고, 사회적으로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는 반응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탄산음료 대신 이 물을 마시고 싶어 한다는 부모들의 메시지도 회사에 이어졌습니다.

리퀴드 데스가 판매한 것은 물의 맛이 아니라 새로운 역할이었습니다.

생수병은 목마른 사람이 들고 다니는 물건이지만, 리퀴드 데스는 취향과 태도를 보여주는 소품이 됐습니다.

제품이 곧 광고판이 된 것입니다.

환경 메시지도 완벽한 면죄부는 아니다

리퀴드 데스는 알루미늄 캔의 재활용 가능성을 강조하며 ‘플라스틱병에 죽음을’이라는 메시지를 내세웠습니다. 회사 공식 소개에도 재활용 가능한 캔과 플라스틱 저감 메시지가 핵심 정체성으로 제시됩니다.

하지만 알루미늄 캔이라고 해서 환경 부담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알루미늄 역시 원료 채굴과 제조, 운송에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일회용 포장재를 계속 생산한다는 근본적인 문제도 남습니다. 환경 측면에서는 텀블러나 재사용 물병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따라서 리퀴드 데스는 환경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기업이라기보다, 환경 메시지를 젊은 소비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언어로 바꾼 기업에 가깝습니다.

진지한 환경 캠페인 대신 해골과 농담을 사용했습니다.

좋은 일을 말하는 방식도 재미있어야 사람들이 듣는다는 사실을 보여준 셈입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물이 팔릴까

한국 편의점의 생수 코너를 보면 대부분 비슷합니다.

푸른색과 흰색 포장, 산과 계곡 이미지, 깨끗함을 강조하는 이름이 반복됩니다. 소비자는 브랜드보다 가격, 용량, 묶음 할인 여부를 보고 제품을 고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시장에 검은색 캔과 해골이 그려진 생수가 등장한다면 처음에는 이런 반응이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물을 왜 저렇게까지 만들어?”

하지만 바로 그 반응이 리퀴드 데스가 노리는 출발점입니다.

한국에서도 제로 음료, 무알코올 맥주, 단백질 음료처럼 기능만으로는 차별화하기 어려운 상품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비슷한 제품이 많아질수록 맛과 성분의 작은 차이보다, 사람들이 그 제품을 들고 있을 때 어떤 사람처럼 보이는지가 중요해집니다.

다만 이름과 포장만 이상하게 만든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리퀴드 데스에는 펑크 문화에 익숙한 창업자의 경험, 광고 제작 능력,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의 사회적 불편, 플라스틱에 대한 문제의식, SNS에서 공유하고 싶은 디자인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겉모습만 베끼면 ‘해골 그려진 비싼 물’로 끝날 수 있습니다.

한국형 리퀴드 데스를 만들려면 먼저 질문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기존 제품을 들고 있기 싫어하는가?

건강한 제품은 왜 늘 재미없어 보여야 하는가?

소비자가 돈을 내는 것은 내용물인가, 그 제품을 사용하는 자신의 모습인가?

결국 리퀴드 데스가 바꾼 것은 물이 아니었습니다

마이크 세사리오는 맛있는 물을 발명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수많은 회사가 팔고 있던 물에, 아무도 사용하지 않던 이야기와 표정을 붙였습니다.

그는 물 회사를 만들었지만 스스로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광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웃게 하고, 그 즐거움이 브랜드를 좋아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 사례가 흥미로운 이유는 누구나 포장을 자극적으로 만들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진짜 교훈은 따로 있습니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라고 해서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기업이 똑같은 말투와 표정을 사용하고 있다면, 오히려 그 시장은 아직 제대로 차별화되지 않은 시장일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새로운 물건보다 새로운 시선이 더 부족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가장 어리석어 보이는 질문이 가장 비싼 답을 만들어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음료에, 가장 위험해 보이는 이름을 붙이면 어떻게 될까?”

그 엉뚱한 질문 하나가 평범한 물 한 캔을 14억 달러짜리 기업으로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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